주일설교_성삼후9주일 설교
성삼후 9주일 설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적한 곳, 그곳은 세상의 경쟁과 잣대 대신에 다른 시계가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인적이 드문 곳, 세상의 이치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속하게 되던 어느 때를 마태오 복음 14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유로우며 해방의 메시지가 담길 새로운 공간, ‘한적한 곳’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곳에는 많은 힘든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저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고 ‘정말이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온 날, 이 ‘한적한 곳’에 이르게 된 것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수많은 인파 속에 속해 있는 힘들고 실패했던 한 사람에게 이 공간은 홀로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어떤 어려움이 해결되지도 않았지만 같은 두려움과 고민을 겪는 이들, 그 무리 속에 합류하는 것은 진정으로 “살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죄책감이나 자기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함께 모여 있는 것은 한 사람의 문제를 여럿의 문제로 만듭니다. 또한 문제와 문제의 얼개는 서로 얽혀서 응집 되고 문제를 선명하게 합니다. 한 사람의 연약함은 어떤 힘을 생성시킵니다.
그 응집은 심연 속으로 휩싸이게 하며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올 새 빛을 기다리는 힘이 됩니다. 새 역사가 막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은 그렇게 당도하게 됩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배고픔을 이해해줄 사람들, 나의 두려움을 삭이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이해받고 인정받는 모두의 장, 공론장, 그곳은 해방의 공간이며 함께 서로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안전지대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다른 복음서의 방식보다 이야기를 보다 간결하게 전합니다. 제자들이 마을로 보내자는 제안이 나오지만 다른 복음서에 비해 그 내용은 길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집중시키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서술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축복 뒤에 나눠 먹인 사람들에게 집중하게 합니다. 세상의 논리로, “음식을 사 먹도록 마을로 보내는 것”이 이어지지만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화폐 가치까지 등장한 강력한 제자들의 저항을 담은 마르코 복음이나 또 루가 복음의 먹을 곳과 묵을 곳에 대한 여러 서사, 요한복음에 필립보와 안드레아까지 등장한 것에 비해 아주 간략하게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때, 모든 이들의 동일한 상태, 제자들의 물음이 그저 평평하게 등장하는 방식은 우리를 그 사건에 집중하게 합니다. 이 사건,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 가진 것이 거의 없지만 모두를 먹인 이 사건은 그래서 기적이 됩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마태오복음의 14장에 기록되었을까요.
2.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로부터 수십 년이 시간이 흐른 뒤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세대와 전해 받은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된 세대 사이에 시간의 거리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의 저자는 여러 기억과 전승을 모으고 배열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다시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서를 썼던 이들은 마태오 공동체 교회의 상황에 맞는 편집으로 성경을 적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즉 이 복음은 어떤 일어난 일에 대한 마태오 교회 공동체에게 필요한 서사입니다. 이 복음에 위치하고 있는 마태오 복음 14장이 어떠한 지 보겠습니다.
신뢰하던 예언자 세례자 요한 사람들에게 성전 밖에서도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요르단강가에서 세례운동을 펼치던 기백 좋고 또 희망이 되어준 요한이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이전 13장 마지막은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대목이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향에서의 거부와 또 어떤 사이, 루가복음에 따르면 어릴 적 뱃속부터 알던 사이며 또 함께 시대적 위기를 건너고자 했던 동역의 관계가 사라짐을 경험한 이후의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마태오는 마치 예수가 ‘한적한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가면서 그의 마음을 예상하게 합니다. 혼자 있고 싶었던 이유, 인적이 드문 곳,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으로 세상을 떠나 있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그 한적한 곳에 모인 이들의 상황을 읽게 됩니다. 같은 자리, 절망의 자리에 있는 메시아는 그들을 보고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가 놀랍도록 많은 이들을 먹인 기적은 여기서 출발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절망을 경험한 마음’ 말입니다. 예수님이 한적한 곳으로 간 것은 메시아도 경험한 부정 때문이었습니다. 희망차고 성공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비유를 들어서 애써서 설명을 해도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던 13장까지 말씀이 14장에 이르러 외면되어지는 장면에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비유가 선명하게 비교됩니다. 예수님이 배고픈 이들을 마주하게 된 것은 한적한 곳으로 초대되는 발걸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가게 된 것은 실패하고 절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마음 속에서 솟아난 마음 ‘측은한 마음’은 모여 있는 무리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합니다.
어려움을 아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일일이 다 먹이시고 그리고도 또 열 두 광주리에 남겨진 조각들까지도 보게 합니다. 이런 기억은 공동체를 분명 다른 자리로 옮겨가게 합니다. 잘 되지 않고 절망 가운데 있으며 잊혀진 이들에게 아주 분명하게 각인 시켜 줍니다. 여자와 어린이를 빼고도 남자만 오천 명, 그러니까 그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충분히 먹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3.
복음서의 위치도 그렇지만, 우리가 이 복음을 읽는 시간도 어떤 필요가 담긴 대목이기도 합니다. 전례력으로 성삼 후 9주일은 어느 덧 부활의 기억이 잊혀지는 더운 여름 한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중 절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가장 한가롭고 가장 밋밋하며 고요한 절기여서 그렇습니다. 이 주일들은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무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매일 읊조리는 주의 기도 와도 같습니다. 연중절기 때는 무엇보다 오늘을 위해 기도하며 폭풍 같은 마음이 아닐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문득 우리의 기억속에 강렬하게 남겨진 무엇을 꺼내 봅니다.
“나는 무엇을 경험했는가?” 하고 돌아봄 말입니다. 기억은 우리들의 매일을 완전하게 다르게 하며 우리의 매일의 밥상을 다르게 채워줍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매일, 오늘의 양식을 구하게 합니다. 그 어느 때 경험했던 일상은 나의 어려움과 배고픔이 있었던 어느 때 경험했던 ‘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나에게 찾아와 나를 다르게 구성하며 나를 다르게 살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먹이신 그 사건은 잊혀지는 시간 속에 선명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신비체험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한 끼 다 같이 누구도 빠지지 않고 동시에 함께 나눠 먹었던 기억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임재하고 나의 연약함 속에서 빛을 발하시며 나의 입술로 고백하게 되던 그 때 진정 그리스도를 만났던 그 순간,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때, 그 때를 소환시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그런 때를 지나쳐왔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을 다르게 합니다.
4.
각각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르지만 남겨져 있는 과정 속에 많은 이들을 배불리 먹인 이 사건은 어떤 기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분명 한 끼를 먹었기에 또 다시 먹어야 하며 흩어져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한 끼가 언제나 그렇지 않기에 그들에게 내려진 기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는 다시 올려져야 합니다. 또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어떤 일 때문에 또 기도해야 합니다.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해야 합니다. 지치고 어려운 일들이 있고 오해와 번민이 있으며 배고프고 아프기도 합니다. 어젯밤에 지쳐서 까무룩 새벽까지 잠 들었는데 또 오늘 밤에도 자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무한 반복되는 어려움 가운데 놓인 나, “연중절기의 시간” 속에 우리는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릅니다.
그 때, 그 날, 우리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배불리 먹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상실과 위협 속에 계셨기에 배고픈 이들을 알아보셨으며 또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니다. 그들이 오늘을 살아가려면 양식을 먹어야 함을 아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마땅히 한적한 곳에서 그들을 완전하게 먹이십니다. 오천 명이나 되는 이들, 성경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숫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경험과 기억으로 흩어질 위기에 놓인 공동체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다시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와 어린이들은 오천이라는 숫자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곳에 나온 모든 이들을 먹이셨던 그 때를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의 성찬례는 이 기억을 고스란히 담습니다. 빵을 드시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마지막 성찬은 이 오천 명을 먹인 기적도 담은 기억일 것입니다. 때때마다 순간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의 성찬례는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우리를 만나게 하는 것은 이러한 기억을 담기 때문입니다.
5.
이렇게 읽어 내려간 복음은 1독서의 이사야 55장을 다시 읽게 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이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나에게 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은 우리 가운데 우리의 필요 가운데 분명히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 기억을 가진 이들, 사랑을 받은 이들은 주님 앞에 모여듭니다. 진한 경험과 체험은 그들을 앞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기적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다리는 이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우리의 것을 나누어 주어도 우리에게 먹을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입니다. 이 맥락과 이 상황 속에 합류하게 됨은 무한한 기쁨과 감사를 가지게 합니다. 잘 되지 않는 매일이지만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그 눈빛을 알기에 힘이 나며 그 힘은 많은 것들을 희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 것을 내어놓고, 내 삶도 내어놓는 자가 되는 이끌림 입니다. 이 힘보다 강력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간이며 새로운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억으로 예수님과 만남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어느 한적한 곳은 어디이며 그곳은 어떤 위안이 되었으며 어떤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경험이 있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고 또 두려운 일들이 있을 때 그 기억을 꺼내서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마태오의 복음서를 써 내려갔던 그 때의 그리스도인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오천 명을 동시에 먹일 만큼 힘이 세고 또 엄청난 일들을 해냈던 기억들이 온전히 나를 이루는 세포들이 있다면 그 때 신비가 나를 찾아올 것입니다. 어느 날 바람이 불어오던 그 때 나를 흔들던 그 신비를 떠올려 보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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