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_성령강림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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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대축일 설교
“그들은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싸웠던 사람들입니다.”(필립 4:3)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해마다 5월 23일이 되면 저에게는 아픈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돌보다가 청년이 되었는데 사고로 하늘나라에 먼저 간 마띠아, 저의 피후견인이었던 석준이의 별세일이기 때문입니다. 3년을 꽉 채웠습니다. 마띠아는 연고가 없이 저와 만나 햇살누리요셉의집 그룹홈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유가족으로 참석하는 이들, 이 별세 성찬례에 오는 이들은 혈연관계가 아닌 교사, 사회복지사, 함께 큰 청년들, 교회 청년들과 어른들입니다. 벌써 3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무연고로 사고가 났을 때 시신을 제가 보호자였는데 인수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여러 법적 의무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할 때 저는 보호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혈연관계 속에 있던 자라는 동안 만난 적 없는 부모와 할머니가 있어서 이들이 죽음을 확인해 주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한 달을 넘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동안 저는 교회에서 아침 기도를 드렸고 장례일을 정했습니다. 23살 나이에 하늘나라에 갔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이 온 교회를 가득 채웠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납니다. 무연고 장례 절차를 밟고 그곳에 보자기를 벗겨내고 유골을 안치해 두기까지 2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기막힌 사연이 있는데 그리고 나서 정신이 들어보니 그곳에는 여전히 자립시기를 맞이하여 온 몸으로 고민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치열하게 자립시기를 살아냅니다. 어디에서 정착할 것이며 누구와 그 문제를 상의할 것이고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들은 온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애쓰면서 치열합니다. 그들의 삶을 오랜 시간 책임자로 보아왔고 또 여전히 그들의 자립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서 새삼스레 ‘삶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립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만 삶이 두렵고 혼란스러우며 어려운 시기일까요?’
2
우리는 어떤가요?
한 청년 그 청년이 짧은 시간 애쓰면서 살아갔던 그 때를 마주하면서 저는 저의 삶을 또 많은이들의 삶을 떠올려봅니다. 삶이 과연 무엇인가. 또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말하게 되는가. 또는 어떤 삶의 조건이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얼마 만큼의 삶의 길이가 그것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인가 돌아 봅니다. 어떤 삶이 과연 고귀하고 또 아름다운가 하고 말입니다. 저는 삶에는 수많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실패와 좌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 나누고자 이 긴 맥락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실패와 좌절을 간직하고 그 눈물과 그 슬픔과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가진 채 빈틈이 있는 삶이 저에게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윤리적으로 귀결되지 않는 설명이 가득한 삶,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시구절과 같은 비유가 넘쳐나는 삶, 모든 삶이 그래서 틈과 흠결을 지니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성령강림을 마주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직후에 나타나신 사건 8일이 되어서 나타나신 그 복음은 다시 우리들에게 찾아옵니다. 이 복음은 이미 부활 2주일에 마주한 대목입니다. 성령강림대축일, 부활이 완성되던 이 시기에 이 복음은 찾아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독한 ‘사건’을 겪으신 후, 이 사건은 가슴 찡한 감동을 내려줍니다. 그 분께서 아픈 몸을 간직한 채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아픈 자국을 지닌 채, 몸에 구멍이 난 채, 몸에 상처가 난 채, 믿지 않는 이, 배반하는 제자로 인해서 사람들 앞에서 모욕 가운데 죽어간 그 순간을 간직한 몸은 다공적인 그 상태입니다. 빛이 투과할 수 있는 구멍난 몸, 실수투성이라 사람들의 돌봄이 필요한 순간, 누군가에게 도움이 손길이 꼭 필요한 그 때를 간직한 우리들의 삶은 놀랍도록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3.
성령강림은 놀랍도록 우리의 몸을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을 축복합니다. 구멍 난 몸을 지닌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부활을 완성합니다. 성령의 불길은 우리들이 가진 두려움과 불안을 불태우고 저 떨기나무 앞에서 실존했던 야훼를 마주하는 모세(출애굽 3장)에게 다가간 것처럼 또 종살이에서 시달리며 이제 탈출을 시도하고 한 발 한발 날마다의 걸음으로 나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정표가 된 것(출애굽 13장)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불이라고 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힘 또 어둠 속에서도 끝끝내 지지 않고 밝혀내는 등불이 되어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 불길은 현존을 보여줍니다. 엘리야가 그토록 불안하고 죽음에 임박해 있을 때 (열왕기상 19장6절), 불길은 뜨겁게 달구어진 돌에 구운 과자를 만들어줍니다. 물 한 병과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엘리야는 살았겠다고 생생히 담겨집니다. 뜨겁게 달구어진 돌, 지금 막 요리를 끝낸 상태이며 따듯하고도 사람을 살리는 손길이 불길인 것입니다.
불길은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불 앞에서 앉아 자기 얼굴이 드러나자 하녀의 고발과 마주함을 부인합니다. 예수를 모른다고 세번 부인하고 나서 불길 속에서 또렷한 자기 얼굴을 마주합니다. 그러자 닭이 세 번 웁니다. 불길은 베드로가 슬피 울고 회개하는 순간이며 베드로를 다시 제자로 돌아오게 하는 후회를 포함합니다. 연약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하는 초대이자 하느님의 현존을 가르킵니다. 이 불길, 성령은 불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요한 복음 20장은 이 불길을 우리에게 내려줍니다. 누군가 빼앗아갔던 은총처럼 다시 그 불길을 다시금 부활의 그 순간, “성령을 받아라”라고 하면 그의 구멍난 몸을 통해 숨결을 불어넣는 어떤 영혼처럼 온전히 옆으로 옆으로 퍼져 나가는 손길이 되어줍니다. 그 옆에서 그것을 받았는 지 안 받았는 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셔서 아픈 몸을 이끌고 제자들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입니다.
4.
삶은 견디어 낼 때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견디어서 살아내는 것보다 복음을 실천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움직임으로써 우리가 그렇게 실패함으로써 우리가 그렇게 표류하는 몸이기에 이동하는 몸이기에 우리는 살아감 그 자체로 다양체를 획득하며 여러 언어를 통해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양이 그 축복을 규정화 시키지 않습니다. 각 모양은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지녔으며 각각은 모두 빛남으로 우리들 곁에서 맥락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모든 나라의 언어로 전해지는 성령의 불길, 복음의 이야기와 고린토인들에게 전해지는 성령의 은총의 각양각색은 모든 사람들의 삶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는 것을 부디 새기시고 부활의 최종 도착지점 성령강림의 축복을 마주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몸의 상처를 지니고 계셨다고 증언합니다. 부활은 상처를 지워버린 몸이 아니라 상처를 간직한 몸의 살아 남음이었습니다.
성육신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봅니다. 성육신, 그리스도가 육을 입으셨다는 것, 그 신비와 그 은총이 물질화되지 않고는 우리가 마주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그 길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분의 공생애 동안 마주했던 길가의 많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기록을 읽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전한 방식, 전할 때 사용한 언어와 사용한 몸짓은 모두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그리스도가 그러했기에 우리도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성령강림은 가장 큰 축복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열매의 색처럼 붉게 물들어가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사랑의 기쁨을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상태 붉게 물들었다는 것으로서의 도착점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부디 모든 삶을 축복하는 그 분의 사라짐 뒤에 온 이 성령을 가득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을 온 품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이 우리 가운데서 기도하실 것이며 우리에게 복음의 새 빛을 써 내려가실 것입니다. 당신의 몸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울려 퍼질 수 있었으며 당신의 이야기가 있기에 더 많은 기록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의 무수한 가능성과 맥락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틈과 결핍은 우리들의 축복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가득히 받으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어떻게 되는 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