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_부활5주일

가해. 부활 5주일 설교 제목(2026년 5월 3일)

너의 심장아, 요동치지 말아라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목요일 faith_book 에서 ‘헬라어의 시간’ 제목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활절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강좌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음가를 읽는 것도 쉽지 않아 과연 이해를 할까 걱정을 했지만, 번역이라고 하는 과정 속에서 오역되고 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숨겨진 뜻을 살피는 일은 원문을 그대로 더 잘 느끼게 했습니다. 아주 푹 빠져있다가 오늘 요한 복음 14장의 대목을 가져와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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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은 헬라어 번역으로 들여다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의 심장아, 요동치지 말지어라”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폭풍처럼 힘들 때 그리고 불안함이 엄습해올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이 나를 잠식해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예수님이 내게 말을 걸어오시는 대목입니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의 심장아, 너의 마음아,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입니다. 나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시는 이 대목은 3인칭이 주격이 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에는 없는 표현이라고 하는데요. ‘너 일어나’ 이런 표현은 있지만, ‘지금 떠든 사람은 일어나’ 이런 3인칭 주격인 언어가 영어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말을 씁니다. “떠든 사람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죄인은 들지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나 ‘너’가 아닌 주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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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에서도 이런 표현이 있다고 하니까 오히려 우리 말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너의 심장이여, 요동치지 말지어라.”라고 하는 명령어입니다. 3인칭 명령어, 명령어라기 보다는 마치 위로와도 같은 이 말, 그 예언이 우리들의 부활 5주일의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요한 복음. 14장의 처음은 그래서, “너의 심장이여, 너의 마음이여, 요동하지 말아라.”라고 명령하면서 시작합니다.

2.

이렇게 요동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공동번역에는 “아버지에게로 가는 예수님의 이유”가 담은 듯 적혀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자리를 맡아두러 내가 가는 것야, 이런 뜻으로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들이 있을 곳이 미리 가서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그러나 원어에는 다른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만약에 아버지의 집이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가서 마련하러 갔다가 너희들을 와서 데리고 갔을 것이다.” 이 말의 본래 뜻은, 맡으러 간다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에는 머무를 곳이 많으니, ‘너의 마음이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너희들은 내가 어디로 가는 지 안다”고 말씀하십다. 그러나 우리는 아나요? 마치 그 분이 어딘가로 가는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그 분이 이야기하는 것은 장소적인 의미의 “어디”를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토마처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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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토마는 물어봅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 지 모릅니다”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른 게 아니고, 내가 바로 길이다. 그리고 진리고,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리고 그 길에 다른 이정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한 분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니, 예수님 따라 걸어가기를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그 길, 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우리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길이며 나의 삶의 방향키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알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를 거쳐가면 아버지께 갈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3.

다음으로 필립보가 또 묻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주 답답해하면서 “아버지께서는 내 안에 머무르시면서 업적을 행한다. 내 주변에 일어났던 사건들, 그 일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증언하는 일이다. 너희도 나처럼 일하면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그 일 안에서 모든 것을 던져서 일하면 아버지께서 너희 안에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 이 드러남, 그의 말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는 그의 하시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되는 사건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그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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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일어난 일, 내가 겪은 일, 내가 마주하는 상황은 나에게 복음입니다. 신앙의 신비는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우리가 성체를 영하기 전, 우리의 기도 속에서 강복한 이후에 우리 몸에 오시기를 요청하면서 가장 강력한 나의 고백에 따라서 그 분의 몸을 받아들이는 고백입니다. 이는 신앙의 사건입니다.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나의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각 사람마다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그릇에 담길 수 있으며 모든 이의 언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성경은 나의 삶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서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시는 그 분의 말 걸어오심, 내 안에서 있는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고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 내게 있는 바입니다. 이보다 더 큰 신비는 없습니다. 그 길, 예수님이 알려주신 그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이 나에게는 ‘신앙의 신비’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4.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교는 신앙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면 머리로 하는 암송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떼제기도회를 다녀왔습니다. 떼제기도회 때 이콘을 앞에 장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콘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거나 성삼위의 각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 참 동안 이콘을 앞에 두고 기도한 뒤에 각 체험을 고백하도록 하는 기도인데요. 이 이콘 기도는 신비롭게도 한 곳에 있으면서도 모두 그 이콘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이 이콘을 내가 바라보았는데 이후에는 그 이콘의 눈길이 나를 향하고 있어서 그 이콘이 나를 읽도록 하는 일, 내 안에 들어와 길을 걷도록 하는 일이 이콘 기도의 특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깨닫는 바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께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건 속에서 우리를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선택을 받은 귀한 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관점의 길은 ‘예수”에게 있습니다. 그 분으로 난 길은 우리를 산 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쓰임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모양으로 우리의 각지고 어긋나고 우리가 가진 남들과 다른 모습은 그분께 귀한 봉헌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바를 주님께 받친다면 건축가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귀한 돌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라고 하는 서툰 사람, 무조건 말하고 보는 행동대장 그러면서 실수투성이이지만 결국 자신이 얼마나 실패하였고 또 나중되었지만 반석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이 대목은 누군가에 돌이 된 이가 돌이 되는 초대를 물려주는 것과 같은 초대가 이어집니다. 마치 스데파노의 겉옷이 사울에게 넘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5.

사도행전에서 스데파노는 순교를 당하는 날입니다. 그 순간에도 겉옷을 사울에게 맡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돌에 맞아서 죽어가는 스데파노는 사람들에게 돌을 맞으면서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용서합니다. 그의 자비하심은 그의 깨달음에서 온 것입니다. 스데파노는 성경 말씀을 다 깨달았습니다. 7장 이전에 나와있는 바에 따르면 스데파노는 구약시대의 믿음의 사건을 모두 해석하고 그 관점으로 의회의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직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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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으며 할 말을 했습니다. 그의 순교는 진리를 깨닫는 소리였으며 또 일생을 던져서 그 깨달음을 증인하는 이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찌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증언하는 일, 한 순간에 아낌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것은 신앙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교회는 완성됩니다. 각 사람의 교회는 완성되고 복음은 살아 숨쉬게 되는 것입니다.

5.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질문이 어디에 나와 있는 줄 기억이 나십니까. 빌라도가 그 질문을 했었습니다. 빌라도에게는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은 어떤 것, 어떤 고정적인 것이냐고 답변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고정되고 불변한 것을 소유하고 싶었고 십자가에 매달려 가장 불명예스럽게 죽어갈 모욕을 줄 그리스도이지만 분명 그가 ‘메시아, 즉 기름부은자, 답을 줄 수 있는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게’는 ‘진리란 무엇인가’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환하고 잘 보이는 태양의 빛을 가득 담은 빌라도의 어깨, 빌라도의 빛남을 간직한 손동작과 대비되도록 어둡고 똑바로 들지 못하는 얼굴과 표정을 확인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손을 뒤로 둔 겸손한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냈습니다. 그렇게 묻는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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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게, ‘진리란 무엇인가’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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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하고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으로서의 길이 아니라 언제든지 걸어가는 사람에 따라서 그 모양을 달리 하는 세상,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공평무쌍한 진리로서의 길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그 길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면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살아 숨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리를 듣고 믿고 의지하여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순전히 내 안에서 울려퍼지는 질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나를 믿느냐, 나를 신뢰하는냐, 내가 길임을 너는 확신하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그 분께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그 복음을 완성하고 길을 알려주셨다는 것을 믿으시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부활절기에 당도한 기쁜 소식이고 분명한 울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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